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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2-24

조회수2,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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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비공식 2만 시간 자원봉사한 사랑의 이발사 신명긍 대표

 

▲ 50년간 이발을 해온 신명긍 대표 © 조영관 본부장

아버지의 기업이 망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14살 때 처음 이발을 배우기 시작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17세에 이발소 주인으로 배려로 독립하여 이발소 사장이 되었다. 오롯이 한길 이용원에 일한 경력이 약 50년 되었다.
지금까지 이발을 하면서 남들에게 봉사하는 기쁨을 갖고 살아오고 있는것이 다른 점이다.
현재 등록된 자원봉사 시간은 7천 시간이다. 대한적십자사의 봉사시간은 1일 3시간만 인정해준다. 하루 종일 일해도 3시간만 인정을 받는 까다로운 봉사시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별도로 시간을 등록하지 않고 봉사한 것만 20년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현재까지 추정해보면 비공식 2만 시간 자원봉사를 하였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봉사를 한다. 이발봉사 뿐 아니라 지금도 적십자사에서 물품정리 등도
한다. 평일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서는 약 40명을 쉬지도
않고 3시간내로 빠르게 봉사도 여전히 한다. 봉사는 정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10년간 일하는 곳은 쌍문역 2번 출구 뒤편에 위치한 현대사우나내의 이용원이다.


그 봉사의 주인공은 신명긍 대표(66세)이다. 요즘에도 이발을 하고 면도 요청하는 고객이 있는지 물어보니
“ 예전처럼 많지는 않다. 어르신들 중 손이 떨려서 면도를 못하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무료로 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불편한 이를 위하여 내가 가진 재능을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있다. 그는 1년 365일중 363일은 출근하여 일을 한다. 2일은 왜 쉬는 가 했더니
“가끔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불가피하게 영업을 못하는 것 빼고는 명절에도 영업을 한다.”
대답한다.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6시 반에는 근무지에 도착하여 저녁 8시까지 일하는 게 정식 코스다. 하루 매출을 어림 잡아보기 위해 하루 평균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묻자 웃기만 한다. 영업 비밀인가보다. 나는 국세청 직원도 아닌데 대충은 알려줘도 좋으련만...
대신 이용원 거울 옆에 걸린 달력에 고객의 숫자를 명기해 놓았으니 보라고 한다.
근데 암호화된 숫자라서 거의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주인만 알 수 있는 암호화 된 숫자는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건강관리를 위해서 평소에 뜸, 수지침을 통해서 자가 치료를 한다.
또한 아픈 환자들을 위하여 일찍부터 수지침을 배우고, 직접 수지침으로 환자들도
많이 낫게 했다고 한다. 그가 그런 노하우를 가지고 수지침 교본을 만들기도 하였다.
공식적인 책은 아니지만 손때가 묻은 환자 치료책 모음집이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에 서예를 배워서 글쓰기를 하는 취미도 갖고 있다.
올해에는 ‘입춘대길’의 내용으로 직접 화선지를 구매해서 서예작품을 600명에게 나누어주기 까지 했다. 무엇하나 모르는 것도 없이 박식하고, 부지런함이 돋보였다.

이발을 평생 동안 하였을텐데 수지침은 왜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다.” 며 피는 못 속인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자녀들이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형제는 원래 7명이었는데 두 명이 어려서 죽고,
셋째였던 내가 자연스럽게 맏이가 되었다. 그래서 동생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주는 역할을 했다. 결혼은 26세에 하였다.“라며 대답했다.

그의 자녀들은 2명인데 연고지가 다른 소년가장 3명을 집에서 함께 키워 분가시켰다.
“유원호, 유길호, 유일호 으로 3명인데 2명은 교사로 근무하고 한명은 식당 주방장으로 열심히 모두 살고 있다.” 그것이 보람이란다.

그의 삶은 특별하였다. 직접 낳은 아이들 2명과 새로운 3명을 함께 잘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공감하며 비법을 물어보았다.

“ 우리 자녀들과 모든 것을 똑같이 대해주었지. 먹을 것도, 입는 것도, 결혼할 때 소형평수 아파트를 해주는 것도.. 차별하지 않았지.” 라며 멋진 대답을 기다렸지만 평범한 답변으로 돌아왔다. 자녀 2명은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있는 아들과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딸이 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잘 키워낸 결과이다.
수지침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쳤 왔으나 82년부터 법적으로 금지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봉사활동으로 고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귀한 분들을 소개했다.
“ 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하던 중 거의 망하였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산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가장 먼저 일한 곳이 이발소였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감사하게도 주인이 나를 이발소 대표로 독립시켜 주었다. 그때 내게는 종업원이 7명이 있었고 군대를 가야할 나이였다. 그 종업원들은 내가 군대가 있을 때 돈을 꼬깃 꼬깃 악착같이 모으고 군 제대를 한 후에 120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아마도 지금으로 보면 1억 원이 넘는 큰 돈이었다. 내가 주인의 은혜로 독립한 것 처럼 감사의 마음으로 그들을 독립시켜 주었다.

지금까지도 매달 한번씩 그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감동이 내게도 밀려왔다.
그 멋진 만남을 매월 셋째주 월요일이면 한다.
이번 2월에도 동일하게 한다고 한다.
정릉동에서 이용원을 하고 있는 송왕기(63세)씨가 가장 연장자이다.
가장 멀리서 오는 사람은 충남 온양세서 이현구(50대 후반)씨다.
7명중 이용원이 아닌 한사람만 현재 쌀장사를 한다. 그래서 자주 못나온다.
이용원을 직접 하는 분들의 머리는 누가 깎아주는지 궁금했다.
“ 대부분 본인 스스로 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이발사끼리 교대로 해준다”고 한다.

“앞으로 봉사활동은 계속하는 건지?”
“지금까지 평생 봉사활동을 시간 날때마다 했다. 정년이 없는 봉사 건강이 허락할때지 해야지” 라며 웃으며 대답을 했다.
부인과 사별한 이후 혼자서 식사를 준비한다. 매일 먹는 점심은 도시락으로 직접 준비해서 가져온다. 오랫동안 하다보니 거의 요리사 수준이라고 한다.

필자에게는 눈 건강을 위하여 미나리 즙을 추천했고
고구마와 비슷한 뿌리식물 마를 우유에 갈아서 먹으라고 하였다.
왜냐고 하니깐. 진맥을 짚어보니 정력이 약하더란다.
코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직 건강(?)한데...
그를 만난 며칠 후에 사무실에서 미나리 즙을 정기적 예약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이발을 해주는 신명긍 대표 © 조영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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