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변경 제정된 사연은 무엇인가?
- 한국노인학회 회장 이돈희 선생이 숨은 공로자
동국대 학생이던 이돈희 본지 대표는 1967년 동대신문에 '아버지날' 의 필요성을 기고 했다.
동국대 4학년때인 1968년 그는 아버지날의 제정 운동을 위해 이대학보(梨大學報) 에 <아버지날> 광고를 재개했다.
그가 뿌린 씨앗은 3년만인 1971년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학생들이 매년 6월12일을 아버지날로 정하였다. 결국 1973년 정부가 5월8일 어머니날을, 아버지날을 포함한 '어버이날'로 개편 제정하는 결실을 맺었다.<편집자 주>
한국의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된 사연
한국의 1956년부터의 5월8일 어머니날이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뀌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한국노인학회 회장 이돈희씨(51). 그가 바로 5월8일에 아버지들도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숨은 공로자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어머니날은 있는데 아버지날은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선린상고 2학년때인 1963년에 고등학생과 대학생 1천 2백 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언론사를 찾아갔으나 기자들은 웃기만 할 뿐 기사화해주질 않았다.
동국대 4학년때인 1968년에 그는 아버지날 제정 운동을 재개했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더 극진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화여대의 학보사를 찾아갔다. 다른 신문에서처럼,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이화여대 신문인 이대학보(梨大學報) 5월20일자에 <아버지날> 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광고를 실었다.
그가 뿌린 씨앗은 1971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학생들이 아버지날 제정운동을 개시하고, 1973년 정부가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개편하는 결실을 맺었다.
정부 요로에 진정서를 내 지난해 노인의 날(10월2일)이 공식적으로 제정되는데 기여하기도 한 그는 지난 3월 노인복지개선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한국토지공사 부장)도 그만 두었다. <문정우 기자>
《시사저널 ㆍ 1998.5.7.【사람과 사람】》, 출처: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하여ㆍ2003.11.25.
<아 버 지 날>
4~5년전부터 매년 어린이날 무렵이면 나는 <아버지날>을 남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만 4년전 어머니날부터 천 이백여 명에게 한달 동안 앙케이트로 조사
발표한 것이 <아버지날에 대한 의견 조사>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더 큰 지금 생각하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한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조사 방법도 서툴렀으니 언제 누가 조사해도 그와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장담도 못하겠다.
그후 작년 6월 중앙일보 『 아버지날 만들도록 』 제하에 어린이의 TV 프로 「긴급동의 있어요」에서 아버지날 만들어 달라고 대통령께 어린이들이 호소를 했고, 효성심을 칭찬히신 박정희 대통령이 이버지날을 만들도록 관계 장관에게 연구·검토 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부질없는 공명심에서가 아니라 아버지날 만드는 자료가 없느니 만치 이거나마 청와대 박대통령께 경증(敬矰)하고픈 마음도 있었으나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감히 대통령님께…』 란 생각이 콱 눌러 버렸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아버지닐 제정 희망이 9할로 나타났고, 남녀 모두 10월,5월,9월 순으로 10월에 정하길 가장 많이 원했다. 디시 날짜를 조사한 결과 무르익는 계절적으로나 어머니와의 불가분의 관계로 보아 어머니날 5월 8일의 8일로 하자는 많은 의견에 따라 10월8일을 아버지날로 정해 봤던 일 말이다.
그래서 10월8일이면 매년 혼자서 아버지날을 지내고 있는 내가 어린이날 어머니날이 든 5월이 며칠후면 내년에 만나자면서 가려하기에 이맘때면 생각나는 것이 아버지날이라고 【푸른 벤치】 에서 속삭였다. <商學科>
《동대신문ㆍ 1967.5.29. 【푸른 벤치】》, 출처: 선린상압고등학교 교지 12호ㆍ 1964.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