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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3-06-06

조회수22,935

제목

(도전한국인38) 30년 만에 다시 붓을 잡았죠! - 디지털아티스트 오진국

도전 서울 人4-서양화가 및 디지털아티스트 오진국 인터뷰

30년 만에 다시 붓을 잡았죠!

 

 

화가를 꿈꿨지만, 타의적 선택으로 다른 길에서 30여 년간을 방황하다가 나이 50세에 그림세계로 돌아와 하루에 1점 이상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서양화가 겸 디지털아티스트 오진국(62세) 화백. 그는 잃어버린 30여 년의 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려운 고통 속에서 10여 년 동안 무려 30,000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이며 작품 활동만 하고 있다. 백발이 하얀 그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블로그나 카페에 뉴스처럼 새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미술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오화백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다.

 

- 하루에 평균 작업하는 시간은?

▲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한다. 한 달에 300여 시간, 1년에 3,600시간 10년이면 최소 3만 시간 이상이다. 보통 아침 10시에 시작하여 10년 동안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작에만 몰두하였다. 그 동기는 잃어버린 30년을 따라잡는 방법은 하루에 10시간이상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방법만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 매일 같이 작품을 하나씩 만드는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 양에서 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작품 활동은 프로세스 속에서 대작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이디어는 형체가 보이는 명사들은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데 비해 불가시적인,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명사를 검색하여 그와 연관된 장면들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그 예로 ‘꽃(Flower)’은 누구라도 알지만 ‘기억(Remember)’은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 대부분 화가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입을 위한 노력은?

▲ 나와 같은 전업 화가가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입의 다변화가 가장 급했다.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파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 콘텐츠의 개발에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디지털처럼 응용성 변형성의 장점을 활용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후에 월간지등에 소개되고 서울 시청뒷면에 200M가 넘는 휀스에 대형 벽화용 그림도 출력하여 전시하고 있다. SBS와 KTV등에 특집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하고, 여러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현대아파트의 동마다 아트월 시공과 유명콘도의 전 객실에 작품을 납품한다거나 국내 굴지의 그룹에 카렌다 등을 수년 째 독점 제작해오고 있다. 더불어 국민대와 부산동의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평생교육원과 아카데미를 통해 꾸준히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 디지털아트는 무엇이고 이 분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 디지털아트는 일명 컴퓨터아트. 사이버 아트, 멀티미디어아트라고도 불린다. 컴퓨터를 통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작가의 감성을 통해 조합, 변형, 축소, 보정 작업등으로 표현한다. 도화지 대신 컴퓨터가, 물감대신 태블릿이라는 입력 장치를 이용한다. 또는 자신이 아날로그로 그린 유화나 수채화 등을 컴퓨터로 불러와서 2차 작업을 하거나 반대로 컴퓨터로 완성된 작품을 출력하여 아날로그로 리텃치(retouch)하는 혼합재료 형식의 창작도 디지털아트의 장르다.

시작은 후배의 권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미술 분야 중에 디지털 아트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인터넷의 인프라 환경이 좋아지고 각종 프로그램 보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나로서는 절묘한 좋은 타이밍에 시작했다. 디지털 아트를 시작한 이후 3년간은 죽은 목숨처럼 하루 10시간에서 15 시간 정도 컴퓨터와 씨름하였다. 포토샵, 플래시나 태그관련 서적 및 홈페이지 제작을 위한 드림위버, 자바 스크립트 같은 전문 서적도 많이 구입했다. 한국화단의 99%가 아날로그에 기반을 둔 작가들이라 디지털 분야에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되었다.

 

- 디지털 아티스트에 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 있다면?

▲ 창작 기반은 ‘디지로그’라는 이어령 교수의 저서에서 얻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밤 세워 12쪽의 장문의 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너무나 가슴 뭉클한 답장을 받게 됐다. “디지로그 미술에 홀로 정진하시는 오 화백의 열정을 높이 삽니다. 내가 도울 일을 마다 않겠으니 언제나 찾아오십시오.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가시밭 길 이지만 나는 오 화백이 누구보다 잘 헤쳐 나가리라 믿습니다. 디지로그는 최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화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 감동으로 몇 날 밤을 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작품을 인터넷에 올리게 된 이유는?

▲ 나의 작품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 되게 하기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작품을 알리기위해 인터넷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2004년 말부터 무려 12군데의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나 홈피, 또는 카페를 개설하고, A4 용지 한 장 정도의 분량의 작품노트와 작품을 매일 올려 실행하였다. 최근 하루 방문자는 평균 1만명이 넘는다. 인사동에 작품을 전시하면 일주일간 1천명이 방문하기 힘들다. 하지만 온라인은 다르다. 블로그에 매일 새로운 것이 있어야 독자들이 들어오듯 뉴스처럼 새로운 작품을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

 

- 온라인 활동을 통해서 알게 된 친구는 많은지?

▲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사귀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나의 작품을 아끼는 친구이기도 하다. 기존에 형성된 인맥에 비해 훨씬 다채롭고 역동성이 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사는 곳도 전국적이며 외국인도 상당수 있다.

 

- 뒤늦게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시작한 이유는?

▲ 고등학교 시절 전국 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하며 일찍부터 유명세를 가졌다. 나를 지켜보는 모두가 내가 유명 미술대학을 거쳐 전도유망한 화가가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눈이 적록색약을 판정받으며, 서울대 미술대학 합격이 취소되는 불운을 맞았다. 젊은 청년이 처음으로 맞는 좌절과 충격이었다. 그 후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서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대기업에 중견간부도 지냈고, 40명이 넘는 건설회사의 대표이사도 하였지만 IMF로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이후 새로운 인생을 결정하게 되었고 그림을 다시 시작하였다. 잃어버린 30년을 찾기 위하여 50세부터 인생의 진로를 스스로 바꾼 것이다.

 

- 기존 미술계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라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하여 경쟁력을 확보 하는 방향으로 선회 하였다. 죽지 않으려고 온라인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온라인 인맥이 무섭게 넓어졌고 이제는 어느 정도 예술의 대중화가 되고 있다.

 

- 나이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하는 말이 있다. ‘아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세월을 탓하며 어쩔 수 없는 변명을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는 사람은 아마도 10년 후에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할 것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자주 말했다는 ‘임자 해 봤어?’ 라는 말이 던져 주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나이가 들면 변화에 대해서 더욱 위축되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면 된다고 믿는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해외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지 15년 정도 되었다. 앤디워홀을 능가하는 세계적 디지로그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그리고 2~3년 안에 국제적인 디지털아트 비엔날레 주최를 계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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