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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이돈희

등록일2021-09-18

조회수12,463

제목

한국 최초 노인학 도입한 이돈희 노인의 날 만든 이

역사의 기록을 찾아서) 한국최초 <노인학> 도입·연구하는 이돈희 씨

노인의 날 주창자

조은비 기자  | 입력 : 2021/09/17 [08:05]

 

▲ 한국 최초 「노인학」 도입 · 연구하는 이돈희 씨, 본지 월드레코드 「대표     © 월드레코드

  

  노인의 날 주창자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은 작아도 주위에 이는 파문은 크기 마련입니다마찬가지로 저의 작은 힘이언젠가는 모든 이의 가슴에도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노인학을 하기엔 너무나도 젊은 토지평가사 (현쟤 감정평가사) 이돈희(29)씨. 그는낳아서 기른 자식들에게까지 버림받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그의 젊음과 일생을 기꺼이 바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석   각  <취  재>

 

■ 고교때부터 관심

 

노인학을 하고 노인문제를 연구한다기에노인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인줄만 알았다그러나 정작 만나 본토지평가사이자 노인의 날』 주창자인 이돈희(29)씨는 기실노인학을 하기엔 너무나도 젊은 사람이었다.

 

노인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여년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였습니다그러나 그 보다 어렸을 땐 제 부모님에 관해 남달리 깊은 생각을 가졌었습니다아마도 가까이에서는 자기 부모에 대한 관심이 나아가서는 다른  부모나 전체 노인들에 관한 관심으로 성장해 나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뭇 겸손하게 말문을 여는 이돈희씨의 고향은 경북 상주.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본 노인들에 관한 기억이 이씨로 하여금 이렇게 노인학을 연구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사실 현 사회의 가정에서 볼 때 흔히 노인들은 집의 뒷방이나 골방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도시는 좀 낫습니다제가 어렸을 때 본 시골의 경우엔 그나마 노인들의 거처는쌀이나 고구마 등이 가득 쌓인 창고와 같은 골방이 고작입니다그렇다고 그런 골방에 누구 하나 들어와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세끼 식사를 날라줄 때가 아니면 온종일 가도 누구하나 문을 여는 사람조차도 없죠저는 그런 것을 보았을 때 저 노인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제 일생을 바쳐 노력해 보겠다고 결심 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서러움은 비단일 손이 바쁜 농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왔을 때 처음 어느 친척 가정을 방문한 이씨의 눈에 비친 것은 다락에서 거쳐하는 노인의 서려움 이었다주인인 그 노인의 아들과 며느리ㆍ딸과 손자에 의하면 방이 없어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지만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이 다락방을 써야지기동조차 어려운 노인들에게 다락방을 거처하라고 하는 것이 있을법한 얘기냐고 그는 흥분한다그 외에도 이씨는 더욱 비참한 환경의 노인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어느 집엘 가도 우선 그 집안에 노인이 있나또 있으면 어떻게 지나고 있나 그것부터 보게 됩니다물론 효심 대단한 아들며느리를 두어서 잘 지내시는 노인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 아들과 며느리의 능력에 비해 너무도 비참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그들이 처음부터 노인이었습니까그들도 한 때는 한 가정과 이 나라를 맡아오신 분들인데그들이 늙고 병들었다고 자식인 우리가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토지평가사인 이씨는 직업상 가끔당국의 철거대상인 무허가 판자집의 보상가격을 매기기 위해 빈촌으로 현장조사를 나갈 때가 있다이때에도 철거대상인 판자집에 들어가 가장 먼저 생각이 미치는 곳은 그 집안의 노인문제그나마의 집이 헐리고 나면 젊은 사람은 그렇다 손치드라도 노인들은 당장 어디에서 거처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친다는 것이다그래서 공정성을 잃지 않은 범위내에서 노인들이 있는 집에 한해서  최대한의 가격을 매겨주려고 한다는 것.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무 이므로제 마음처럼의 후한 가격은 매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헐릴 집을 앞에 두고 땅이 꺼저랴 한숨을 내쉬는 노인들을 뒤로하고 그 집을 나설 때면공연히 죄진 사람마냥 마음이 울적해 지기만 한다고.

 

■ 아버지의 말없는 사랑

 

그는 노인의 날』 과 더불어 아버지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외아들로 자라 누구보다도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씨로서는 어머니 못하지 않게 자녀를 키우는데 애쓰시는 아버지에 대한 공덕을 찬양하는 날이 없음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그래서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엔 <아버지날을 만드는 것이 좋은가?> 라는 설문을 가지고 서울에 있는 남녀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여론조사를 하기도 했었다총 1,25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아버지날』의 제정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씨는이에 자신감을 얻어 각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아버지날의 필요성을 각계에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씨가 이렇게 아버지날을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이면에는 누구보다도 진한 아버지에의 정이 있었다.

 

씨가 국민학교 6학년 하생이었을 때 본시 몸이 약하시던 어머니가 다시 병을 얻어 요양차 시골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가셨다이때부터 주부가 없는 부자간의 눈물겨운 고생이 시작되었고씨가 이때처럼 부정(父情)이란걸 깊숙이 느껴본 적은 없었다당시 건축현장 소장을 하는  씨의 부친은 아침 일찍 공사현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씨는 손수 밥을 지어 먹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곧장 풍로에 숯을 넣고 불을 피워 냄비에 밥을 지어놓고 아버지를 기다리면 아버지는 늦게서야 집에 돌아 오셨다그러나 씨는 한번도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고그러나 이점에 있어서는 부친도 마찮가지였다현장감독이면 식사도 현장에서 나왔지만 홀로 밥을 먹는 어린 아들을 생각한 부친은 한번도 저녁을 먹고 오신 적이 없었다고.

 

열두살의 어린 아들이 차린 어설픈 밥상이지만 두 부자는 항상 마주 앉아 정답게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그날따라  덜탄 부분의 밥을 뜨자 겨우 한그릇 밖에 안되었다할 수 없이 아버지 밥만 떠서 상을 본 씨는 아버지가  들어 오시자 오늘은 배가 고파서 먼저 먹었다고 했다아버지는 잘 했다고 하면서 아들이 차려온 밥상 앞에 앉으셨다그러나 첫술에 모든 것을 눈치 챈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상을 물려 놓으셨다.

 

사실은 오늘 나도 먹고 왔구나.』  그 때 말없는 가운데 가슴 속을 흐르는 부자간의 정을 아무도 모를거라고 씨는 말한다 비오는  날우산을 가지고  정류장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때 시야를 오가는 여인들이 전부 엄마의 모습 같아  울던 일. 그때 달려와서   아들을 꼭 껴안고 수염이 따가운 뜨검게  볼을 부벼 주시던 아버지의 사랑을 못내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시련은 어머니가 병이 나아 다시 올라오신 석달후엔 깨끗이 사라졌습니다만 그 석달 동안 그처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섬세한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말없는 사랑은 자칫 묻혀 버리기 쉽지만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선 양쪽 모두 사랑이 꼭같은 비중을 차지 하는게 아니냐는게 씨의 아버지날제정에 관한 변이다.

 

노인학을 도입ㆍ 연구

 

노인의 날이 있기까지 씨가 쏟은 정성과 노력은 기실 엄청난 것이었다전국민에게 노인의 날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각 일간지와 주간지에다 노인의 날』 제정에 관한 호소문을 싣기도 했고 노인문제 연구에 관한 광고문을 수없이 신문에 내기도 했다그러나 이것을 위한 광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 대학생이었던 씨는 학생들의 과외지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했다과외가 없는 주일엔 한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성당을 다녀오는 길로 신문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비싼 광고비인지라 이렇게 해서 번 돈을 두 달은 합쳐야 신문에 겨우 큼지막한 광고를 하나  낼 수 있었다. 일단 신문에 호소문이 실리면 씨는그 신문 300부를 사서 그 부분을 오려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 앞으로 서신을 띄었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도 냉정했다신문에 수 없이 호소문을 내고 그 때마다 저명인사 앞으로 서신을 띄워도 누구 한사람 이에 관심을 가져 주는 이는 없었다생각다 못해 씨는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직접 찾아가 부탁도 해 보았다그러나 책가방과 책을 들은 씨의 젊은 모습은,  월부장사 취급을 받기가 일쑤였고 유명인사들은 하나 같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명인의 방문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는다면 기꺼이 혼자 힘으로 밀고 나기리라 마음 먹었다일반인의 호응을 얻고 참여 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선 만든 이가 시범적인 노인의 날』 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씨는 1971년 48신촌에 있는 신촌 로터리 예식장을 빌려 순수한 자비로 마포구내 각 동장의 추천에 의해 초대한 불우 노인 450명이 참석하신 이날 제1회 노인의 날』 행사를 위해씨는 부친과 상의 끝에 방 한 칸을 전세 놓아 경비에 보태기로 했다는 것.

 

아버지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그와 같은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언제나 따뜻한 말과 격려로 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곤 했죠.

 

이 노인의 날』 행사가 끝난 후 씨는 많은 노인들의 격려와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그러나 정작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젊은층이나 각계의 인사들은 이 행사를 참관한 후에도 여전히 이를 외면해 버리더라는 것.

 

☆ 노인들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의지의 사나이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48일 노인의 날행사를 녹음해서 다음날 방송했던 CBS 기독교 중앙방송(프로듀서이영우아나운서강원희)의 방송 이후에 기독교 방송· 동아방송 등에 숱한 호소문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71년 9월부터 기독교 방송의 할머니  안녕하세요」 프로에 담당 프로듀서의 주선으로  방송을 계속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씨의 진지한 방송 대담과 노인문제 상담이  방송을 타고 많은 사람들의 귓전에 울려 퍼지자 방송국 측에서는 거듭 출연해줄 것을 요청씨는 이 시간을 통해 통신원(리포터) 이라는 이름으로  40여회를 계속 방송할 기회를 얻었다그러나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하여 선뜻 나서서 힘이 되어주는 독지가는 아무도 없었다.

 

『 참 이상합니다. 가난한 학생이나 고아원을 도와주려는 이는 많아도 노인과 양로원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군요이 사회에서 노인문제란 그저 남의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71년의 제 1회 『노인의 날』 행사  이후  자비로라도 1년에 한번씩  『노인의 날』 행사를  더 가지려던 당초 계획이 엄청난 경비 탓으로 중단할 수 빆에 없는 점이다. 적어도  1회   행사비가  2백만원 이상 드는 현실을 생각할 때 도저히  한 개인의 연례 행사로는 감당할 길 없었다고 그는 쓸쓸해 한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은 작아도 파문은 주위에 크게 일기 마련입니다그 파문이 번지다 보면 언제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닿으리란 신념으로 담담히 그 날을 기다리며 혼자서라도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씨의 서재에는 노인에 관한 각종 서적과 또 그간의 자료를 모은 스크랩이 몇 권이나 알뜰히 보관되어 있다.  붙이지 않고 그저 모아 놓은 자료만도 트렁크 하나는 족히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간의 연구를 정립코자 현재 노인학을 도입ㆍ 연구 중이라는 그는 3년전에 결혼부모를 모시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남다른 아들 며느리를 두었기 때문인지 씨의 부모님은 너무나도 젊어 보인다어쩌면 부모님이 저렇듯 젊어 보이실까.

 

글쎄요저희 내외는 뭐 특별히 잘해 드린 것도 없고 아직 늘 부모님꼐 도리어 신세를 지는 입장입니다. 아마도 마음 잡숫기 나름인가 보죠. 저희 부모님은 항상 웃으며 사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찡그리고 체념하시는 일이 없죠.』 씨에 의하면 젊음은 마음이 즐겁고 마음 먹기에 달린 듯. ()

 

<취재  기사> 출처 : 월간 <사랑> 1976년 8월호( 45년전)

 

이돈희 임마누엘 :   성가정(예수ㆍ 성모 마리아ㆍ성 요셉 양부님)생애학 연구가/UN 평화대사/ 대한노인신문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세계어버이날 만든 이/큰 바위 얼굴/ 가톨릭언론인신앙학교 심화반 회원/ 가톨릭독서아카데미 회원/예수님의 직접 계시와 말씀에  따라 4-5년간 저술한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 몬테피아스코네 베네딕트 수도원 마리아 세실리아 바이즈 원장 수녀(1694-1766)의 이탈리아어 대걸작품 VITA INTERNA DI GESU CRISTO (예수 그리스도님의 내면생활 = 예수 그리스도님 내면의 삶)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 출판 기획위원/ 사)도전한국인본부 총재/ 사)대한노인회 중앙회 자문위원/문재인 대통령님께 특별 청원드립니다! 4회, 문재인 대통령님 내외분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 1회, 청와대로 직접 익일 특급 우편 송부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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