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도전한국인 기사 보기

HOME > 언론소식 > 도전한국인 기사 > 보기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2-02-18

조회수44,451

제목

(도전한국인4) 발명건수 1천개 넘는 '한국 발명왕' 정희윤

발명건수 1천개 넘는 '한국 발명왕' 정희윤

가난에 굴하지 않고 공업고등학교에 입학 '발명으로 큰 성공'


발명만 1천개 넘게 한 한국의 발명왕 정희윤(남, 25세).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발명을 하여, 수천만 원을 지원받고 이를 사업화하기 위하여 미국 해외연수를 간 대한민국 최초의 학생인 사장. 발명건수 1,100개로 2010년 대한민국 인재 상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 교육 받는 것에 대한 열정이 많아서 수료증 받은 것만 120개이고 2010년에는 대한민국 최다 헌혈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헌혈만 100회를 넘었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발명의 길에 들어섰다. 숫기 없는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레크레이션 교육을 받아 1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으로서 또 하나의 도전을 할 것임에 분명하다. 젊고 패기 넘치는 한국의 에디슨을 만나 보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정희윤 ©브레이크뉴스

 

- 발명왕 정디슨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수상경력과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발명품은 몇 개정도이며, 내용은 어떠한가?


▲ 지금까지 해온 발명은 약 1,100개가 넘습니다. 수상도 국제대회 20~30건을 포함해서 100건이 넘습니다. 하지만 특허출원을 하고 등록이 되어야 본인의 아이디어가 되는 것처럼 실질적인 발명은 특허 건수인 10건 밖에 되질 않습니다. 하나의 발명품이 특허출원을 하기까지 많은 재원과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발명품이 있지만 중학교 시절 저에게 발명에 발을 드리게 했던 아이디어가 바로 수화기를 들면 자동으로 소리 줄임으로 변하는 tv입니다. 일반적으로 tv를 보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가 전화를 받곤 합니다. 하지만 tv소리 때문에 다시 tv쪽으로 가서 tv볼륨을 줄이곤 합니다. 이로 인하여 시간도 지체가 되고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수화기를 들면 보고 있던 tv의 소리가 소리 줄임으로 변하고 통화가 끝난 후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자동으로 소리가 원상복귀 되는 발명품입니다. 이외에도 소스수용구조를 갖는 위생적인 튀김수용용기, 자가진단기능이 있는 화재경보시스템, 조수 퇴치용 허수아비, 진화기 식별용 소방시설 등이 특허출원을 한 발명품들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어릴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발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 중학교에 처음 입문하여 듣기에도 생소한 발명부라는 ca클럽에 가입하면서 발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아이디어로 발명대회에 출전하며 수원시 교육장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른 대회에도 참가하여 어마어마한 상들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위에 설명한 ‘소리가 줄어드는 tv’를 개발하면서 재능이 있는지 알았습니다. 이 때 ‘소리가 줄어드는 tv'로 lg대표이사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하는 조회시간이면 항상 상을 받는 저의 모습에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역시 인문계를 진학할 수 있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재능이라기보다 공부하기 싫어서 발명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중학교 재학시절만 해도 교육과정 자체가 하나만 잘하면 대학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발명으로 대학을 가자는 생각을 했고 이를 구체화 시켰을 뿐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 정희윤 ©브레이크뉴스

 

-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았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발명동아리를 하면서 추억거리가 있다면?


▲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발명 벤처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선생님들의 압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심했습니다.

“공부나 해라”, “네가 뭘 하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친구들 또한 저를 무시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팀원을 구성하기 위해 친구들을 모아놓고 설명을 했습니다.

“회비 10만 원에 나랑 같이 사업할 사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거 하면 얼마 버냐?”, “야! 너 친구들 코 묻은 돈으로 뭐 하게?”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 편은 저의 자신감 하나뿐이었습니다. 꾸준히 발명품을 만들었고 고등학교 방학은 저 자신을 위해 반납한 상태였습니다. 눈 뜨면 청계천 상가나 용산 전자 상가에서 살았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괄시받기를 여러 번, 저에게도 노하우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어른처럼 정장을 입고 다니면 무시하지 못하겠지?’ 생각했지요. 역시 교복보단 정장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말도 길어지고 정말 활동하기 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하여 물건을 고르기 이전 선수 쳐서 “사장님, 여기 카드도 되죠?”라고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는 저의 명함을 만들고 다녔습니다. 이쯤 되니 어리다고 무시하지 못하더군요.

정말 더운 날씨에도, 정말 추운 한겨울에도 차비만 들고 출퇴근을 한 지 어느덧 1년, 우연히 방송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학교에서는 물론 어디에서건 잠시나마 스타가 되었고 역시 다른 발명 대회에 참가하여 수상함으로써 학교의 이미지는 물론 전자과의 이미지를 상승시켜 동아리방이라는 큰 선물을 얻게 되었고, 중·고등학교 생활 동안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고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선진 과학기술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endif]-->

▲ 정희윤 ©브레이크뉴스


-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어떻게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 고등학교 시절 창업대전이라는 한국 최대 규모의 대회에서 전국에서 유래가 없이 제가 속한 고등 팀이 수상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해 저는 중소기업에서 인정을 받아 모든 금액을 지원받아 미국이라는 대륙을 밟게 되었고 사업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자그마치 100만 달러, 10억이라는 거액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 문제와 학생이라는 신분의 고정관념, 인맥의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큰 공모전에 참가하여 상금을 통해 자본금을 마련했고, 숫기 없는 성격의 극복을 위해 레크리에이션 교육을 받아 1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말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평생 버스 운전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신 저의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자본문제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저에게 처음 찾아온 첫사랑도 깨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으나 아직 저에게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었습니다. 늘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없다면…….우리 어머니와 동생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늘 하고 다닙니다.

또한 나중에 제가 다 성장했을 때 20년, 30년을 내다봅니다. 그러면서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현빈 이라는 연예인을 통하여 해병대라는 군대가 뜨고 있는데 저는 만 19세에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하였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역시 지금까지 시간과 노력을 쏟은 나의 발명에 대한 꿈을 절대로 포기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 본인이 직접 연구하고 씨름했던 모든 발명품이 다 똑같이 애정이 가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고, 소중한 발명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제가 중학교 시절에 대구에서 지하철 참사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불이나면 소화기의 위치를 알려주고 자동으로 신고해주는 기능을 개발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여러 기관에서 지원을 받아 제품을 개발하였습니다. ‘화이어지트’라는 소화기 지지대 음성 전달 시스템으로 고등학생신분으로는 수천만 원을 지원받고 이를 사업화하기 위하여 미국 해외연수를 가는 것은 제가 대한민국 최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돈이 돈을 난다고 사업은 실패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발명품이 빛을 발할 날이 와서 상용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허를 출원하면 누구나 로열티를 받고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특허도 땅과 같은 재산권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합니다. 지금 7년차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특허를 버려야 할지 아님 계속 잡고 있어야 할지 늘 만만치 않는 세금을 내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발명품 중에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먹는 후렌치후라이 용기에 y로 선을 그어 용기 안에 넣고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있습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사용하기를 권고하였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핸드폰 충전이 다 되면 소리가 나서 충전완료를 알려주는 것, 자동으로 분리수거 되는 쓰레기통, 신발 건조대,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장치 등 많은 발명품들을 실생활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너무 많지만 다 소개해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발명을 하면서 ‘아! 정말 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 각종 tv프로그램에 방송이 되면서 사람들이 시청하고 이런 발명품 정말 좋은거 같은데~ 라고 말하는 순간이 가장 보람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은 힘들게 공부하였지만, 성공한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발명을 하며 상도 받고, 대학도 가고, 돈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허 출원은 쉽지 않은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세금도 계속 내야 하지만 특허를 출원하여 등록이 되었을 때 또한 보람이 있습니다.

여기 스크랩 해 놓은 것과 같이 지금까지 많은 방송프로그램, 신문에 소개되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으면서 저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또 자랑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와 스케줄을 관리하는 프랭클린 다이어리 앞에도, 머니클립에도 저의 이름을 새기고 다닙니다.

 

- 가족들이 보는 정희윤씨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히며, 가족들 소개 좀 해 주길.


▲ 어머니는 처음 중학교 때 상을 받았을 때는 기뻐하셨지만, 그 후로는 상을 받아 와도 그러려니 하셨습니다. 다른 부모님이라면 여기 저기 전화해서 자랑하고 용돈도 주셨을 텐데 저는 수없이 상을 받아서 집에서도 일상화가 되었습니다. 또 대학에 붙어서도 엄마는 그러려니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을 때는 ‘2009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 때는 정말 기쁘셨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기도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교육방침은 ‘하고 싶은 것을 해라’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은 저한테 아빠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저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큰 형에 가려 동생이 묻혀버리기 때문에 때론 미안하기도 합니다. 제 동생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만18세에 군대에 입대를 하여 2007년 대한민국 최연소 입대자입니다.

 

▲헌혈 중인 정희윤 ©브레이크뉴스

 

- 훌륭한 사람에게는 항상 스승이 있다고 하는데, 발명왕이 될 수 있도록 삶의 멘토가 되어주신 분이 있다면?

▲ 발명을 하면서 멘토를 찾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발명만 한다는데 좋아할 선생님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고등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선생님들은 발명을 하는 것을 싫어했고, 발명동아리를 만들었을 때도 좋게 보시는 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때 찾아간 선생님이 오종환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나온 삼일공고는 미션스쿨이었는데 선생님과 발명대회를 나갈 때 마다 기도하고 간 날만 상을 타고, 그렇지 않은 날은 타지 못했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지금 오종환 선생님은 부장선생님이 되셨고, 저와 선생님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발명창작과가 생겼습니다. 2010년에는 올해의 스승상도 받으셨습니다. 저와 제 후배가 2년 연속 대통령이 주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고, 선생님도 올해의 스승상을 받으시니 한 학교에서 3년 연속 대통령상을 받는 이례적이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는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가 하고 이명박 대통령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강연도 해 주셨다고 합니다. 삼일공고에 오종환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아시아 발명협회 홍성모 회장님을 존경합니다. 중학교 때 한국발명아카데미에서 발명을 가장 처음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발명에 관심이 있어서 비싼 교육비를 내면서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지금역시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도 어머니의 지원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장님께서도 많은 제자가 있지만 저 같은 제자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 발명을 하려면 많은 연구시간과 실험장소가 필요한데 주로 어디서 연구하고 발명했고, 현재는 어디서 하고 있는지?


▲ 얼마전까지는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원에서 사무실을 내고 연구를 하였습니다. 제 파트너인 조천백 대표(팅킹아이디어연구소)가 중국에 연구차 들어가면서 사무실을 정리하였고 지금은 제방을 리모델링하여 정상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이 집에 있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학교수업 이틀과 강의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발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발명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보든지 발명을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 모든 장소가 저의 연구실, 연구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젊은 나이에 많은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를 하면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 2010년에는 경기도에서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었습니다. 아이들이랑 소통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사고도 있었고. 때려주고 싶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소화초등학교 재학 중인 조휘연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이 학생은 늘 명랑하고 멘사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수업에서도 늘 우수한 학생 이였습니다. 한번은 곤충수업으로 장수풍뎅이를 기념으로 준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큰 백화점에서 장수풍뎅이가 살 수 있는 집을 구해주기위하여 먹이를 비롯하여 각종 도구를 구입했는데 2틀 후에 장수풍뎅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휘연 학생이 너무 불쌍한지 장수풍뎅이가 죽어서 휴지에 돌돌 말아서 묻어준다고 했던 기역이 납니다. 또 전기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휘연학생이 수업 중에 220v에 감전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저도 놀래서 어떻게 마음을 진정 시킬까 생각하다가 얼마 전 헌혈을 하고 받았던 반창고를 붙여주면서 이걸 붙이면 아프지 않을 거야~ 하면서 붙여 주었더니 참 신기하게 ‘선생님 괜찮은 것 같아요’~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수업할 때 강의안이나 지도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읽고, 쓰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함께 축구를 하면서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만들기 위주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재밌게 해 주는 것이 저의 수업 방침입니다. 발명캠프나 수업 중에도 잠이 오는 학생들이 있으면 자라고 합니다. 그럼 10분~15분자고 일어나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다 수업에 집중합니다. 어느 날은 한 학생의 어머니가 이런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노는 것 같고, 노는 것 같은데 공부를 해요. 너무 좋아요 선생님.” 아이들에게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그렇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100가지를 다 알려주는 선생님이기 보다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 발명 말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없는지..있다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나? 여유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내는지 궁금.


▲ 발명 말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야구입니다. 야구시즌인 요즘엔 야구를 보고 야구장에 살 정도입니다. 주말에 야구라는 취미를 갖고 스트레스를 풀곤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사회인야구에 가입하여 지금은 9년차 완전 고참이 되어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 심신을 달련하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어 늘 주말이 즐겁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야구장에 갑니다. 발명이 항상 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혼자 야구장에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저는 헌혈을 자주 합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최다 헌혈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헌혈이 최대 1년에 24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2주에 한 번씩 가서 헌혈을 하다 보니 날짜가 1년에 최다기록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헌혈을 자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몸 관리를 하게 되어 저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 삶의 좌우명과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지?


▲ 저의 미니홈피와 집안에 적혀있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쌓아온 것은 경력이 아니다. 경험이다.’ 입니다. 해병대 생활을 하던 중 군대선배 한 분이 저에게 “희윤아, 너가 쌓은 것은 경력이 아니라 경험이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이후로 이 말을 잊을 수가 없고, 제 삶의 신념으로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의 글을 인용하여 쓴 것도 저의 신념이 묻어나 있을 것 입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고3이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겼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하지는 않았으나 물질적으로는 평화로웠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가난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나라 5000만 국민 중 나를 아는 사람은 500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차츰 나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알아갈 것이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친구들 공부할 때 내 분야를 개척했기에 성적은 많이 부족했으나 내 분야에서는 항시 최고였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나는 바보란 소리를 들으며 현재 자리에 서게 되었고 나는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비로소 이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적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적을 만드는 것이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한국 최고의 발명왕이 되었다.

 

- 많은 도전을 해 오고, 실패에 대한 경험도 있는데 또 다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가 있을 텐데..


▲실패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보고 되지 않으면 다시 다른 도전을 하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발명이나 대학이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실패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우선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이 가끔 집에 놀러 와서는 “넌 하고 싶은 거 만들고 놀면서 일하니까 진짜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발명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하다가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창의영재캠프 같은 경우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제가 가르치는 제자가 발명대회 나갔을 때 상을 못 받으면 어쩌나 등등 다른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저도 똑같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귀인’을 만납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일이 풀어지곤 합니다.

 

- 지금도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아직 학생 중에는 발명 훈장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최연소로 발명의 날 때 수여받는 발명 훈장을 받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에서는 정치외교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정치를 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암기위주가 아닌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으로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도전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 발명에 관심이 있는 어린친구들에게, 후배들, 혹은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발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좋게 만드는 것, 편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 많이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명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발명은 빨대 휘어지게 하는 것, 볼펜색깔을 많이 하게 하는 것, 연필에 지우개 붙이는 것이 모두 발명이 되는 것입니다. 발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즐기면서 하는 것입니다

0

0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sitemap
하단로고

도전한국인운동본부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20번지 프린스텔 404호(국회의사당역) / TEL : (02) 3775-0708  

Copyright (c) 2013 challengekorea.or.kr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네모의미학